중학교 수학여행 길, 차창 밖으로 빨갛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와, 저기 좀 봐” 하고 소리치던 기억이 난다. 버스 안 아이들은 모두 다 일어나 신기하고 탐스러운 풍경을 바라보며 손뼉을 치고 환호를 보냈다. 수학여행 내내우리의 대화는 사과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유리알처럼 맑고 순수했던 그 시절 아이들의 마음으로, 다시금 빨갛게 익은 사과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고 아련한 상상에 젖어 본다. 세월이 흘러 가을이 깊어 가면, 우리 집으로 어김없이 묵직한 사과 상자가 배달된다. 가을 햇살을 듬뿍 머금고 빨갛게 익은 사과를 동생이 한 해 노고를 마무리하며 형제들에게 보내오는 것이다. 해마다 잊지 않고 사과를 보내는 동생의 정성을 생각하며 나는 보약을 먹듯 고마운 마음으로 맛있게 먹는다. 평생 사과밭을 돌아보며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더 빨갛게 사과를 카워 낼까’ 온 몸과 마음을 쏟아부었을 동생이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보약이다”란 말은 그 만큼 풍부한 영양분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봄이 오면 나무를 심고, 꽃이 피기 시작할 때쯤 위로 솟은 가지를 수평 아래로 유인해 내린다. 그래야 잎이 풍성해지고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충분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이 피기 전에는 나무의 건강을 위해 강황같은 재료로 소독하는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꽃이 많이 피면, 탐스럽고 맛있는 명품 사과를 만들기 위해 아깝지만 중간중간 꽃을 솎아내는 작업을 한다. 이윽고 피어난 꽃에 결실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4월과 5월에는 늘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며 비가 오기 전에 병해충 방제를 하고, 여름이 오면 햇빛이 구석구석 잘 들도록 웃자란 가지를 제거하며 위로 솟구치는 가지는 수평 이하로 매어준다. 7월 하순 이후에는 나무가 병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가볍게 가기치기를 해준다. 9월과 10월이 되어 사과 알이 굵어지면 햇살을 방해하는 잎들을 따낸다. 햇빛의 농도에 따라 사과의 빛깔이 달라지기에, 사과나무 밑에 은빛 깔개를 깔아 사과가 구석구석 고르게 익어가도록 하는 모습에서 농부의 대단한 지혜를 배운다. 사과 이야기를 할 때면 입에 침이 고이도록 신나게 설명하는 동생의 모습에서, 한 알의 사과를 키워내는 농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뜨거은 땡볕과 모진 비바람, 그리고 찬서리를 몇 차례 맞으며 비로소 사과에 깊은 향이 배어든다. 이처럼 한 알의 사과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묵묵히 버텨내는 충분한 시간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수확을 마친 후에도 쉬지 않고, 겨울이 오기 전 다음 해를 위해 땅에 거름을 주고 흙을 좋게 하는 비료로 영양분을 공급한다. 잎을 푸르게, 열매를 잘 맺히게 하며,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영양분들, 그것은 사과나무가 추운 겨울잠을 자는 동안 가만히 머금고 힘을 키우는 소중한 양분이 된다. 한 해 동안 농부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열매가 우리의 입으로 들어와 건강한 몸을 만들어준다. 겉은 붉은 사과지만, 속살은 황금빛을 띠며 피로를 풀어주고 소화 흡수를 돕는다. 껍질에 영양이 더 많다고 해서 깨끗이 씻어 손에 들고 껍질째 한 입 와삭 베어 물어본다. 매일 챙겨 먹었더니 정말 얼굴에 윤이 나고 빛이 나는 듯하다.진한 땀방울이 배어 있는 사과 상자를 묵묵히 보내오는 동생의 정성 어린 손길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햇살 아래 자라나는 수많은 식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매일 먹어야 힘이 나는 벼 이삭, 보리 이삭, 밀 이삭 등 모든 곡식이 따뜻한 햇살을 통하여 우리에게 건네어진다. 무엇보다 한 알의 씨앗을 뿌렸을 뿐인데, 자라나 백 알이 넘게 곡식을 꽉 채워낸 벼 이삭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경이롭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땅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철칙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이 귀한 열매들이 따뜻한 햇살 덕분에 맛있고 예쁜 모양으로 영글어가고, 우리 몸을 이롭게 하는 좋은 성분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햇살 먹은 사과’는 농부와 하나님의 동업 작품이다. 농부는 사과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약을 뿌리며, 정성껏 거름을 주어 나무의 기본 틀을 굳건히 잡아 준다. 그리고 하늘의 따스한 햇살과 바람이 그 정성 위에 스며들어 마침내 가장 완벽한 열매를 맺게 된다. 햇살과 기적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해마다 당연한 듯 받아왔던 사과 상자, 사과가 붉게 익어가기까지 들인 정성과 그것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동생 마음의 깊이를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오늘 저녁에는 멀리 있는 형제들에게, 그리고 이 귀한 햇살과 정성을 보내준 동생에게 고맙다는 안부 전화 한 통을 먼저 걸어야겠다.
최종편집: 2026-10-22 16:59:58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오늘 주간 월간
제호 : 크리스천경남본사 :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대로 581-1, 1층 안채(석전동)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다01435호(주간) 등록(발행)일자 : 2010년 11월 5일
발행인 : (사)경남성시화운동 편집인 : 성재효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학규 청탁방지담당관 : 이학규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성재효
Tel : 055-223-1600e-mail : cgnews@naver.com
Copyright 크리스천경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