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산 북항이 시끌벅적하다. ‘부캉이’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이들은 웃는다. 어른들도 카메라를 든다. 함께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긴다. 북항의 새로운 명물이 된 셈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 본다. 우리가 부캉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캉이가 우리를 바라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부캉이의 눈에 비친 사람들은 참 바쁘다. 아침부터 서두른다. 일터로 간다. 사람을 만난다. 경쟁한다. 돈을 벌고 미래를 준비한다. 그러다가 북항에 온다. 잠시 멈춘다. 부캉이를 바라본다. 사진을 찍는다. 웃는다. 부캉이는 그 순간 우리에게 묻는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며 살아왔습니까?” 사람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잊어버린다. 성공을 좇다가 삶의 목적을 잃기도 한다. 많이 가지려고 애쓰다가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기도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가복음 8:36)” 삶은 소유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무엇을 바라보며 사느냐로 결정된다. 부캉이를 보러 오셨다면 잠시 더 머물러 보자. 바다를 바라보자. 하늘을 바라보자.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자.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보며 산다. 그러나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놓치며 산다. 돈은 보지만 사람을 보지 못한다. 성공은 보지만 가족의 눈물을 보지 못한다. 화려한 세상은 보지만 외로운 마음은 보지 못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1)” 달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멈추어야 할 때도 있다. 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돌아보아야 할 때도 있다. 사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캉이를 만날 때가 있었다면 헤어질 때도 계산해야 한다. 부캉이는 여러분의 관심이 싫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고마울 것이다. 그러나 부캉이는 자신만 바라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보다가 이웃을 보세요.”“북항의 아름다움을 보다가 힘겨운 사람을 보세요.”“즐거운 사진을 남기다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남겨 주세요.” 부캉이의 마음은 성경과 닮은꼴이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9)”고 하셨다. 믿음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바라본 사람은 결국 사람을 바라본다.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한다. 부산이 진정 아름다운 도시인 것은 바다와 북항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도시이기 때문에 비로소 아름답다. 언젠가는 부캉이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부캉이는 떠날 것이다. 새로운 명물이 등장할 것이다. 유행은 지나간다. 사람들의 관심도 옮겨간다. 그러나 부캉이를 보며 웃었던 마음만은 남았으면 좋겠다.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조금 더 천천히 걸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서로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부캉이는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 저를 보러 오셨지요? 그런데 이제 서로를 바라보세요. 그리고 하나님도 한 번 바라보세요.”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2)”그 순간 북항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이 삶을 돌아보고,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의미있는 은총의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