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영원히 너와 함께 있고 싶다”, “널 영원히 사랑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영원’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실감하며 그 말을 쓰는 경우는 드뭅니다. 어떤 사람은 영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큰 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에 새 한 마리가 천 년에 한 번씩 날아와 부리를 갈고 갑니다. 이렇게 하여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면, 그제야 영원에서의 하루가 지난 것입니다”.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우리가 영원을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주제넘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영원을 추구하는 갈망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고 자주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죽지 않으려는 강한 욕구가 있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不老草)를 구해오라 명한 것도, 고대 이집트의 왕들이 자신의 몸을 미라로 남기고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영원을 추구할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본래 영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은 늙어가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감할 것입니다. 몸은 나날이 노쇠하고 병들며 약해져 가지만 우리 안의 영혼은 늙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영적 존재인 우리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영원의 반대말은 `잠깐` 또는 `찰나`일 것입니다. 잠깐만 유용한 것과 오랫동안 요긴한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입니다. 하물며 그것이 십 년, 이십 년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백 년의 삶조차 영원 앞에서는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한 존재인 우리는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들에 도리어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손안에 쥔 눈송이가 온기에 스러지듯 우리가 붙잡으려는 것들 대부분은 잠깐 있다가 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땀 흘려 좇는 거의 모든 것이 그러하며 이 땅에서의 삶 자체가 그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편 90:5). 우리는 잠깐 낮잠을 자면서도 긴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깨어나 보면 그 긴 꿈은 허망하게 사라지고 맙니다. 광야에서는 밤중의 비로 인해 아침에 무성히 풀이 돋아나 초원처럼 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풀들은 한낮의 불볕더위에 이내 말라버리곤 한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와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새벽안개는 몇 미터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짙게 끼어 있다가도 햇볕이 비치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시편 103:15).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붉은 꽃도 십 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신부의 면사포처럼 새하얗던 목련도 며칠을 못 가 갈색으로 시들어 버린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다음 주말에 사랑하는 사람과 와서 보아야지 했던 벚꽃이 어느새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곤 합니다. 인생은 이렇게 짧고 그중에서도 꽃과 같이 영화로운 시절은 더더욱 짧습니다.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욥기 7:6~7). 저는 가마니 짜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았고 또 짜 보기도 했습니다. 가마니틀에 새끼줄을 촘촘히 걸어 놓고, 그 사이 사이로 짚을 하나씩 밀어 넣어 가마니를 짜 갑니다. 짚을 하나씩 물고 새끼줄 사이로 들어가 짚을 내려놓고 다시 나오는 작대기는 1초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왕복운동을 끝냅니다. 숙련된 직공의 손에 들린 베틀의 북도 이렇게 날실 사이로 씨실을 빠르게 통과시킵니다. 인생이 이렇게 금방 지나가는 짧은 것이라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요? 말할 것도 없이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부(富)도, 권력도, 명예도, 인기도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아무리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아도 그것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맙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들을 붙잡으려고 안달하지만,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며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한낱 점과 같은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를 준비하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짧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는 다음 세상의 영원한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영생(永生) 아니면 영벌(永罰) 둘 중의 하나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하루가 영원을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최종편집: 2026-10-22 16: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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