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내새끼들은 자고로 끄트머리 세 개를 조심해야 한다.” 옛날 시골 할머님들의 명언이다. 끄트머리 세 개는 혀끝, 손끝, 그리고 거시기 끝이다. 혀끝은 말조심, 손끝은 도박 조심, 거시기끝은 여자 조심이다. 배움의 무게가 확 뒤 집혀지는 삶의 철학이다.♢ 오늘 우리는 불편한 시대를 산다. 존경이 의심으로 바뀌는 것은 일상이 된 시대다.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말보다 삶이 더 크게 심판을 받는다. 종교지도자인 목사도 예외가 아니다. 강단 위의 말은 여전히 거룩하다. 그러나 삶이 이를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그 간극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어느 시대건 그 시대의 마지막 보루는 교사와 성직자다. 이 보루가 무너지면 그 시대는 종말을 고하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교사는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성직자는 지금 제 자리에 서 있는가. 종말을 내다 본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가슴이 찢어진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 21)♢ 세계 최대 교회라고 자랑하는 Y교회는 한국에 있다. 이 교회의 L 목사가 지금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단골 메뉴인 남녀관계 때문이다. 아직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는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이다. 더 엄격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라는 것을 망각한 결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흥분이 아니다. 정죄도 아니다. 깊은 성찰이다. 그리고 말씀 앞의 두려움이다. 성경은 지도자의 자격을 분명히 말한다. “책망할 것이 없으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딤전 3:2). 이 기준은 선택이 아니다. 심판주 하나님의 엄명이다.♢ 성욕과 음욕의 구별이 엄격히 요구되는 작금이다. 성욕은 좋은 것이다. 부부간의 성욕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음욕은 절대 금물이다.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 이상한 관계를 맺거나 음탕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음욕이다.♢ 음욕을 피하는 방법은 그 자리를 당장 박차고 뛰쳐나오는 길밖에 없다. 창세기 39장의 요셉을 본받아야 한다. 음란의 마귀 앞에 승자는 절대로 없는 법이다. 아예 유혹의 싹을 처음부터 잘라버려야 한다.‘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던 서화담도 황진이의 유혹 앞에서는 넘어지고 말았다. 역사의 엄연한 교훈이다.♢ 사람은 연약하다. 그럴수록 지도자는 더 엄격해야 한다. 영혼을 맡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주님의 재림심판의 그 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 주님은 분명히 물어보실 것이다. “음행을 피하라”(고전 6; 18). 이는 개인윤리를 뛰어넘는 공동체의 거룩을 지키는 일이다.♢ 오늘 모든 교회도 이 질문 앞에 바로 서야 한다. 목사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인가. 이는 지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 전체의 문제다. 거룩은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하는 덕목이다. 나 자신부터 나 자신에게 엄격하게 묻는 삶이어야 한다. “이윤민 목사, 너는 정말 목사의 경계선을 끝까지 지켜나갈 자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