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소리는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라 삶의 한 장면을 전환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한 통의 전화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때로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역사나 개인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을 살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한 김구가 일본인을 처단하고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중 고종 황제의 전화로 극적으로 살린 일화가 있다. 사형 집행 직전 고종은 감리서에 직접 전화를 걸어 사형 중지를 명령하였다. 전화 한 통으로 김구는 사형을 면하고 94일 만에 감옥에서 나와 독립운동에 매진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사건으로 137년의 통신 중 가장 역사적인 전화로 백범일지에 기록된 유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시간을 정해놓고 ‘전화로 합심하여 기도’함은 매우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권사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문득 나의 부 교역자 시절이 겹쳐온다. 젊은 날, 사역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이 힘이 들 때마다 내 아픔을 묵묵히 들어주고 품어주었던 분이시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비록 일주일에 3번씩 병원에 오가야 하는 연약한 육신이지만, 기도함으로 새 힘을 얻고 “강 목사님 전화를 받으면 힘이 들어옵니다” 하며 기뻐하며 기다리고 있다. 이 전화선은 오랜 시간 서로의 영혼을 살려온 생명선과도 같다. 합심하여 기도할 때 ‘하늘의 힘’이 채워지기에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   너무도 마음이 쓸쓸한 날이었다. 간간이 전화하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차 전도사가 생각이 난다. 둘은 멀리 있지만 힘들 때마다 전화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남편 목사님이 개척하여 힘든 이야기며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며 현시점을 나누기도 한다. 이날도 지친 마음이었지만 지나간 날들의 은혜로운 이야기가 오고 가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멀리 있지만 공중 전파를 타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느끼는 감정교환은 평안을 안겨주었다. 세상 사람들은 전화로 일을 처리하지만, 우리는 전화로 은혜를 나눈다.   한밤에 시집간 딸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아이가 열이 나요’ 서둘러 딸 집을 방문하여 기도하고 열이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밤늦게 잠이 오지 않는다고 울먹이며 전화가 온다. 아이가 중학교 배치가 멀리 되었다고 하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또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긴 이야기를 하고 편안하게 되면 전화를 끊는다. 이처럼 전화의 위력은 대단하다. 부탁이나 안부를 묻는 일이며 친구와 통화로 계획 세우기며, 상담하기도 하지만 그 따뜻함과 편리함에 과하게 기대다 보면 전화가 오지 않으면 나만 세상에서 소외된 것 같고,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상태이면, 내 마음의 평안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전화기가 상전이 된 셈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거리두기’이다. 전화기는 고마운 통로이지만 내 전부를 해결해 줄 방패막이는 안된다. 때로는 전화기를 잠시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어쩌면 가장 먼저하고 가장 나중까지 완벽한 전화인 것을, 육신의 일로 바빠 나중으로 미루다 멀어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면서 다시금 가장 선두자로 세워야 할 ‘하나님의 직통전화’이다. 인간은 기분 나쁘면 안 받고 핑계하지만, 신실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새벽이든 한밤이든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분이다. 편리한 세상보다 더 편리한 전화가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한 통의 기도로 우리가 살아난다. ‘한 통의 기도’는 나 혼자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함께 아파하던 동역자들의 낙심한 마음까지 살려내는 마중물이 된다. 오늘도 위로부터 내리는 이슬을 먹으며 살아간다. 세상의 때를 벗겨주시기에 숨을 쉰다. 변찮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아버지께 오고 가는 실정을 보고하듯 아뢴다. 모든 일을 맡기며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가 평탄하게 이루어져 간다. 이렇게 좋은 아버지의 사랑을 못 느끼면 나만 손해다. 부디 세상일 제쳐놓고 날마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시길 바란다. 젖 먹는 아기는 생명을 다해 엄마 젖을 빤다. 살기 위해서다.   언제나 준비된 생명줄이 기도이다. ‘옹달샘에 토기가 물먹으러 가기만 하면 배부르게 먹듯이’ 아버지께서 넘치도록 주시는 생명의 음료를 부지런함만 있으면 된다. 얼마든지 풍성히 먹고 마시고 나누어 주는 물은 생명줄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먹지 못하면 육신도 목마르지만, 영혼도 목말라 더 이상 ‘아버지’ 이름조차 부르지 못한다. 부디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 마음껏 마시고 새 힘을 얻기를 바란다. 솟아나는 폭포수처럼 넘쳐나는 그 풍성함을 남에게 빼앗길 수는 없지 않을까?   세상의 뉴스는 손안의 한 통의 전화로 가능하지만, 영혼을 가진 인간은 한 통의 전화로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존재다. 그러기에 하나님과의 교통은 필수다. 하늘의 것을 공급받아야 비록 땅에서 살지만 우리의 심령이 살아난다. 그래서 새벽을 깨우고 저녁기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누리는 자만이 가지는 특권일 것이다. 오늘도 그 한 통의 전화로 하나님과 만난다.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음은 하나님과의 교제로 내 안에 부어지는 평안일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이.
최종편집: 2026-06-16 18: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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