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앞선 기고에서도 자주‘기복신앙’은 물질적이며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는 왜곡된 신앙으로 비판을 받고 있음을 기술했다. 이러한 비판은 범 세계적이긴 하지만, 유독 한국 종교와 기독교에서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복신앙으로 매도되는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는 신앙 행위는 과연 저차원적이며 비성경적일까? 또한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이상적 세계의 추구와 성경의 9가지 열매(갈5:22~23)의 덕목 성취만이 고차원적 신앙일까? 앞서도 기술한 대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약 현세적인 복을 배제한다면 인간이 신을 믿는 행위는 거의 소멸 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현세적인 복에만 치우치는 것은 분명히 많은 문제가 있다. 이에 본 호에서도 계속 기복신앙의 정체성에 대해서 논하면서 기복신앙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바른 신앙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기복신앙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 1) 전통적 한국형 무속신앙의 형태: ‘기복신앙’이란 말은 앞선 기고에서도 논한 대로 주로 한국에서 무속신앙을 비판할 때 사용된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형 무속신앙은 어떤 유형인가? 먼저는 복에 대한 개념이다. 전통적으로는 오복(壽,富,康寧,攸好德,考終命)에 대한 기대이다. 그다음은 이 복을 성취하기 위한 `재수굿(財數)`이다. 이는 우리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적인 제례로서 개인과 집안의 무병장수와 운수 대통으로 부귀영화를 귀신이나 조상신에게 염원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속 행위이다. 하지만 이는 주로 현세적인 것으로서 영적인 복에 대한 개념이나 도덕성과 윤리성이 거의 없다. 또한 이러한 복은 죽은 조상에게 제사와 재수굿을 하면, 후손들에게 복을 내려준다고 믿는 전형적인 한국형 제례 의식이요 기복 신앙이다.   2) 한국형 무속적 기복신앙에 대한 한국교회의 보편적 인식: 앞서 기술한 제사와 재수굿은 선교 초기부터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우리 기독교 신앙으로 볼 때 반드시 척결해야 하는 과제였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성경에 기록된 현세적인 복까지 경계해야 할 기복신앙으로 오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교인들이 개인이나 가정의 무사안일과 자녀들의 입학이나 취업 등의 현세적 오복 등을 위해 기도하거나 설교하면 이는 무속신앙의 기복신앙이라고 매도하게 된 것이다. 흔히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란 속담과 같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세적인 복에 대한 성경적 관점은 어떠할까? 이에 대해서 논하면 다음과 같다.   3) 성경이 말하는 현세적인 복: 앞에서 기술한 현세적 오복에 대한 성경적 내용은 정말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앞선 기고에서도 몇 차례 논한 대로 성경은 이러한 복을 금지하거나 기도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야곱의 얍복 강가의 기도(창 32:26):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의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하며 구한 가족과 자신의 생명을 위한 간절한 기도의 경우. (2) 신명기 28장의 약속된 현세적 복에 관한 약속의 말씀(신 28:4-6):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의 경제적인 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의 경우. (3) 한나의 기도(삼상1:10~11): 술 취한 여자처럼 하나님 앞에 매달려 자식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내용이나 평생 사무엘을 위한 헌신과 기도는 불임을 가임(可妊)으로, 자식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이다. (4) 야고보의 병든 자를 위한 기도(약5:14~16): "병이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하라"는 건강을 위한 치유의 기도. 이 외에도 주기도문의 네 번째 기도인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등 많은 말씀이 현세적인 복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라는 말씀들이 나온다. 3. 결론 및 제언 이상의 내용에서 본대로 우리 한국에서의 기복 신앙에 대한 견해는 비교적 비판적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기술한 대로 한국형 무속적 기복신앙은 여러 종교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흔들 정도로 나쁜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 기독교 신앙에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여기에 대한 많은 경계심과 함께 비판적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지나친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되다 보니 성경에 있는 많은 기복신앙의 말씀까지 도외시하는 현상도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복신앙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정확한 영들 분별의 은사로 무엇이 올바른 기독교적 기복신앙인지를 잘 파악하고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최종편집: 2026-06-06 07: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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