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얼중학교 교사 김유선과 김성숙; 서울서 내려온 선생님   김동길의 『백년의 사람들; 김동길인물한국현대사』에 학생 김동길이 대학생봉사대를 조직해 1949년 겨울방학 한얼중학교로 내려와 40여 일간 임시교사로 함께 근무한 봉사대원으로 조선신학교 맹의순과 이규호, 연희대학교 김동길과 이근섭, 이화여대생(김유선, 김성숙과 이보영)에 대해 앞 연재 글에서 언급하였다. 이들 중 강성갑 목사의 농촌교육운동을 따르고자 대학 졸업 후 한얼중학교 교사로 내려온 두 분의 여선생이 계셨다. 이에 대해 김희보의 『사랑을 받느니보다는 사랑을 주게 하소서; 황광은 목사 이야기』(종로서적 2000)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김유선과 그의 남편 황광은 목사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황광은은 1923년 2월 25일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1970년 7월 15일 47세의 젊은 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최근 《한국장로신문》에 위 김희보의 책을 저본으로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란 제목의 연재 글(1회(2022년 6월 7일)-82회(2024년 4월 30일)이 실려 있다. 이 연재 글에 의하면 황광은 목사의 사모 김유선은 이화여대 약학과를, 그의 친구 김성숙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50년 5월경 한얼중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이들은 대학재학시절 농촌계몽운동이나 수양회 등 항상 함께한 친구 사이로 대학 졸업 후 첫 직장도 한얼중학교에서 김유선은 물상, 김성숙은 영어 담당교사로 근무한다.   이들의 대학재학시절 모습을 담아본다. 김동길은 연희대학교(1946년 입학) 재학시절 기독학생회(YMCA) 회장(학생회가 구성되기 전 YMCA회장이 학생대표 역할을 수행함), 이어 초대‘민선’총학생회장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김유선은 이화여대(1946년 입학) 입학 1주일 만에 그의 어머니 이숙경 여사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버지는 1945년 8월 1일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 초대 통리로 임명된 김관식 목사이다. 그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그 막내가 김유선이다. 김유선의 아버지 김관식 목사는 김유선이 대학 3학년 때인 1948년 세상을 떠난다. 대학입학 1주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어 2년 뒤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마저 잃은 김유선은 이화여대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대학 생활을 마쳤다. 이때 기숙사 사감은 김동길의 누나 김옥길(나중 이화여대 총장)이었다. 사감 김옥길은 김유선을 종교부장으로, 영문과 김성숙과 교육학과 우보영을 부원으로 임명한다. 김유선은 종교부장으로 부원들과 함께 섬기면서 영성을 키웠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김성숙은 김유선과 이화여고 재학시절 같은 반 친구였고, 우보영은 평양 정의여학교 동창생으로 평생 신앙생활을 함께한 친구 사이이다. 학생회가 없던 시절 기독교 계통의 학교인 이화여대는 YWCA 회장단이 학생회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때 김유선은 YWCA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매일 교정에서 드리는 예배 인도 그리고 때로는 임원이 순서에 따라 설교까지 담당했으며, 이 시간에는 전교생과 교수들도 참석해 이들 앞에서 떨면서 설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주일에는 이화여대 강당에서 ‘협성교회’라는 교회명으로 이대와 연대 학생, 교수와 교수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김동길과 김유선은 1946년 동일 학번으로 김동길은 연희대학교 YMCA 회장, 김유선은 이화여대 YWCA 부회장을 맡아 이대와 연대 연합교회인 ‘협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공유하였다. 이에다 김동길의 누나 김옥길이 이화여대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면서 김유선을 종교부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런 때에 학생 김동길이 ‘대학생봉사대’를 조직해 40여 일간 한얼중학교로 내려가 임시교사로 봉사한 일 등은 이들 기독교공동체의 뜨거운 관심거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다 강성갑 목사는 학교의 바쁜 일정에도 자신의 농촌교육운동을 널리 알리고 실천할 동지를 찾고자 그가 졸업한 연희대학교, YMCA와 YWCA 등을 찾아 강연에 나선다. 해방공간 새나라 건설에 대한 강열한 열망과 함께 강성갑 목사가 꿈꾸며 실천한 농촌교육운동에 대한 강연을 들은 청년학도들, 이들은 뜨거운 가슴을 안고 농촌지역 진영으로 내려와 강성갑 목사의 교육실천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이화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김유선과 영문과를 졸업한 김성숙이 대학졸업 후 첫 직장으로 한얼중학교 교사로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부임한 첫 달부터 그 현실은 녹녹지 않았다. 부임 한 달 만에 한국전쟁이 터졌고, 이들이 믿고 따랐든 강성갑 목사는 1950년 8월 2일 수산교 다리 밑에서 공산주의자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순교한다. 게다가 진영지서에서는 서울서 내려온 김유선과 김성숙을 조사한다고 오라 하면서 이들이 소지한 라디오를 압수하는 등 빨갱이로 몰려는 분위기에 이들은 급히 몸을 피신하게 된다(김희보, 「사랑을 받느니보다는 사랑을 주게 하소서」, 117-119).
최종편집: 2026-06-06 07:24:16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오늘 주간 월간
제호 : 크리스천경남본사 :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대로 807-1, 2층(합성동)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다01435호(주간) 등록(발행)일자 : 2010년 11월 5일
발행인 : 구동태 편집인 : 이학규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시온 청탁방지담당관 : 이학규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구동태
Tel : 055-223-1600e-mail : cgnews@naver.com
Copyright 크리스천경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