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불치 병이라고 알려졌던 질병들이 과학이 발달 된 21세기 근래에 와서는 거의가 치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결핵, 당뇨, 암, 고혈압 같은 병들도 항원제를 발견해서 곧 이땅에서 자취를 감출 날이 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옛날과 달리 날이 갈수록 이와같은 무서운 질병들이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가 바로 감정 장애와 자존심의 상처로 이와같은 질병들이 생긴다는 놀라운 보고가 있습니다. 미국정신과 의사협회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전염병을 제외한 발병률의 75%가 감정의 상처로 말미암는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중에서 감정이라는 매개체를 무시하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간에 감정이 그 생활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정에 상처를 입게되면 영혼이 병들고 정신이 병들고 생활이 파괴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감정이 상처를 받게 되면 4가지 현상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는데 ①불안과 염려가 따르는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②좌절과 열등의식의 감정인 실패감이 생기고 ③좌절과 열등의식의 감정인 실패감이 생기고 ④편견과 이기심과 자만심에 의한 교만한 마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 의학이 인공심장을 만들어 죽을자도 살린다는 높은 경지까지 왔는데도 불구하고 감정의 상처를 치료할 의학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발표한 임상연구의 결과를 보면 사람의 감정 상처를 치료하는 묘약은 따로없고 있다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상처투성인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와같은 처방은 이미 2천년전에 우리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료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전 13장 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요일4장18절 ‘사랑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인간의 중요한 감정을 사랑과 두려움으로 나누고 이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본능적인 욕구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표현 중에서 사랑의 표현처럼 아름다운 표현이 또 더없는 것입니다. 들어도 들어도 또 들어도 싫지않는 것이 사랑의 언어입니다. 사람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사랑이 충족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수 없습니다.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 영혼을 만족하게 하고 육신의 생활을 기름지고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시대는 바로 진정한 사랑이 메말라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냉정하게 살려고 하다보니 사람들의 가슴이 얼음처럼 차가워져 감동이라는 느낌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중 속에 살면서도 외로워하고 소외감으로 몸부림을 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에 살면서도 친근한 대화가 없습니다. 물질이 풍요한 환경속에 살면서도 너그럽고, 여유있는 마음가짐이 없고, 누구를 경계하고, 의심하고, 적개심을 품으며 상대방에게 속을 내주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기계문명과 경쟁심리구조가 극도의 개인주의로 만들었고 기계화된 극도의 개인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고칠 수 있는 묘약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너희는 서로 사랑할지니라 너희는 서로를 긍휼히 여길기니라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느니라   오늘 성시화 참석한 여러분들 다른 은사보다 사랑의 은사를 받아 병든 심령과 가정과 교회를 치료해 사랑이 넘치는 교회와 가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상한 감정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남을 사랑할 때 상한 감정이 치료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이사랑의 선물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 두려움과 불안과 미움과 증오가 싹드는 것입니다. 에리히 르폼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특성을 5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①남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②책임을 느끼는 것 ③존중하는 것 ④이해해 주는 것 ⑤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자꾸 주고 싶은 마음, 보고 싶은 마음이 바로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남에게 주다 보면 행복해지고 즐거워집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주는 자의 복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에게 불쾌를 주지말고 사랑을 주세요. 미움을 주지 말고 사랑을 주고, 상처를 주지말고 사랑을 주어 내가 건강해지는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남의 사랑을 받을 때 내가 건강해집니다. 사람도 식물도 짐승도 모두가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인간은 사랑을 받을 때 아름다워지고 윤택해지고 가치가 있게 느낍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랑을 받을 때 의로워지고 유해지고 겸손해집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랑을 받을 때 남을 용서 할 수 있게 되고 시기와 질투와 증오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로마서 13장 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10절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다’ 서로 사랑하시기를 서로 바랍니다. 서로 긍휼히 여기고 서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남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내상한 감정이 치료가 됩니다. 우리나라가 88올림픽 후 90년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미국의 육아방법이 좋고 핵가족제도가 좋다고 말하면서 우리도 속히 그런 제도를 도입해서 생활의 과학화,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자녀교육방법에 있어 지나친 과보호나 의존적인 가족제도가 사회발전을 저해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학자들이 주장한 과학적인 육아방법이나 근대화된 핵가족제도의 제창으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들을 개인주의로 기르는데는 유익했는지 몰라도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자녀로 기르지 못해 사회적인 문제아로 발생시켰고 핵가족의 제창으로 말미암아 가족구성원의 결속을 와해시켜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없이 나와 내가족이면 된다는 무서운 이기주의를 낫게해 비정한 사회로 전락시켰습니다.    오늘날 정신질환자가 많은 것은 바로 그 육아법 때문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엄지손가락을 빠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머니의 젖을 흡족히 빨아보지 못하고 대신 우유병을 시간제로 빨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쉽게 말해 욕구충족이 되지 않아 문제행동이 나온 것입니다. 1916년도에 통영에 살던 어떤 여인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수사관들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사인을 규명하려해도 알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녀의 일기장 가운데서 사인이 밝혀졌는데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사고로 죽었고 그가 죽게되자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병들어 죽어버리고 만 것있니다. 즉 사랑할 대상자를 잃고 사랑받을 대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처럼 허무하게 죽은 것입니다. 사랑의 힘은 이처럼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우리에게 말씀은 ‘내가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서로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불의가 난무하는 세상, 살인과 비정과 어두움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된 것은 사랑이 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긍휼히 여기고 피차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우리안에 있는 모든 상처는 다 아물고 치료받아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상처난 곳을 치료받는 축복받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간을 모든 질병에서 치료하고 구원해주실 수 있습니다. 칼 바르트가 그의 유명한 저서 ‘교회 교의학’을 내고 미국에 갔을때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의 방대한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칼 바르트는 서슴치 않고 아주 간단하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을 계속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비유한 눅15장22절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품을 떠난 작은 아들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워 돌아오는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최종편집: 2026-06-06 07: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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