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과 언어의 장벽 허문 6년의 여정… 붕어빵 전도부터 이주민 인권 구제까지, "우리에겐 이 일이 본업입니다"오늘날 대한민국 농어촌과 중소도시에서 이주노동자는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이웃이 되었다. 하지만 낯선 땅, 낯선 언어 속에서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차갑고 고단하다. 이 차가운 현실 속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 하나로 이주민들의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준 평신도 부부가 있다.
8년 전, 경남 김해에서 밀양시 상남면으로 터를 잡은 김집사(전문 소방 공사업)와 신권사(의류점 운영)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일터에서는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이주민들 사이에서는 ‘고충 해결사’이자 ‘부모’로 통하는 이들의 특별한 사역 이야기를 담았다.
■"알아 듣지도 못한 채 예배당에 앉아 있는 그들이 안쓰럽더라고요"…
부부가 이주 영혼들에게 처음 마음을 쏟게 된 것은 6년 전 어느 성탄절이었다. 교회 맨 뒷자리에 목표없이 앉아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부부의 눈에 들어왔다. "예수님 오신 기쁜 날인데, 우리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니 그 시간이 얼마나 답답하고 무의미했을까...억지로 앉아 있는 듯한 그 모습이 참 안타까웠어요."
며칠 후, 그들이 집 앞을 지나 마트가는 길에 인사를 건네자 들어오게 해서 볶음밥과 차를 대접하며 "한글을 배워보겠냐"고 제안했고, 흔쾌히 좋다는 답변을 얻었다. 일주일 동안 교재와 기초 복음 메시지를 준비하고 기다렸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오지 않았고 집 앞을 몰래 지나 다녔다. 첫 사역의 좌절이었다.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부의 기억 속에서도 그들이 잊혀져 갔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멈추지 않았다.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붕어빵 전도에 열심을 내고 있을 때 또다른 캄보디아인 부부가 농장주이신 장로님의 인도로 교회에 왔다. 그들을 보니 2년 전 실패했던 경험이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많은 기도와 철저한 준비로 캄보디아인 부부가 있는 농장으로 찾아갔다. 외국인과 만남이 두렵고 떨렸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설득해서 토요일과 주일 저녁 맛있는 간식도 손수 준비하여 말씀 공부와 양육을 시작했다. 시골 교회라 처음엔 김집사 혼자 시작했지만 그들의 인원이 늘어남으로 인해 전도에 열정이 있는 교회 사모님과 성도들의 동역으로 한글공부와 말씀양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3명으로 시작된 모임은 15명까지 늘어나 예배와 한글 공부를 겸한 이른바 ‘오산캄 예배당`의 시작이었다.
캄보디아 현지 교회의 설교를 다운받아 예배를 드리며...영적 리더를 키우기 위해 애썼고..
이주민 사역을 선행한 대형교회를 통해 자료도 구하고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이주민 예배가 시작 되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처럼, 세월이 흐르며 이주민들의 마음 문이 열렸고 복음이 심겼다. 세례를 받는 이들이 생겨났고 마침내 믿음의 리더까지 세워졌다.
부부는 이 현지인 리더를 신학대학원에 보내 목회자로 키우고 싶었지만, 학력 미달이라는 현실 장벽에 부딪혀 무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부부는 낙심하는 대신 그에게 캄보디아 현지에서 신앙 서적을 구입하는 길을 안내해 주며 스스로 말씀을 공부하고 동료들에게 기초 신앙을 가르칠 수 있도록 끈질기게 지도했다. 명절이 되면 고향이 더 그리울 이방인들을 위해 부부는 기꺼이 ‘한국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따뜻한 명절 음식을 차려 이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이주민들 역시 자국의 음식을 만들어와 함께 파티를 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번져간 웃음소리 속에 국경의 벽은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
■`찾아가는 예배`에서 `붕어빵 전도`까지… 멈추지 않는 복음의 열정부부의 사랑은 이주민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거동이 불편해 교회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교회 동역자들과 매주 토요일마다 6곳의 경로당을 순회하며 `찾아가는 예배`를 드렸다. 예수님이 곧 생명임을 전하는 걸음이었다. 이후 하나님의 계획하셨던 섭리 속에서 섬기던 교회를 떠나 밀양서부교회로 적을 옮기게 되었다. 처음부터 눈물로 일군 이주민 제자들을 계속 돌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그들은 여전히 부부의 진심을 기억하고 지나는 길에 차를 마시러 오거나 명절에 안부 인사를 건네며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임지인 밀양서부교회에서도 영혼을 향한 부부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김집사는 그 교회 카페를 이용해서 성도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마다 따끈한 붕어빵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 지역 주민들과 이웃에게 전하며, 오늘도 밀양 땅에 믿음의 불을 지펴가고 있다.
■임금 체불, 학대, 성추행… 이주민들의 든든한 `무면허 행정사`부부의 사역은 최근 네팔 이주민들에게까지 지경이 넓어졌다. 김해에 이어 밀양에 네팔식당을 오픈하려는 네팔인을 도와 내부 공사및 식당 인허가 전반을 해결해 주고 또 다른 사람의 체불된 임금도 받아주었다. 작은 도움이 그들과의 신뢰를 돈독하게 되어 네팔인 공동체가 구축되고 자연스럽게 한글 공부팀이 생겼다. 그들의 복잡한 비자나 사업 관련 문제를 들고와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에 이르렀다. “옛날에는 일일이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니며 전도해야 했는데 이주민들이 먼저 저희를 찾아옵니다”라고 말한다.
긴박하고 가슴 아픈 사연도 많았다. 어느 날 저녁 8시쯤, 경찰청으로부터 농장주에게 학대와 성추행, 임금 체불을 당한 채 시비가 붙어 도망 나온 캄보디아 여성 2명을 임시로 돌봐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부부는 흔쾌히 그들을 품었고, 다음 날 경찰을 대동하고 농장을 찾아가 이들의 짐을 당당히 찾아주었다. 현재 신권사가 운영하는 김해 서상동의 의류가게는 이주민들과의 자연스런 교제가 일어나는 사랑방이다. 주변 이웃들은 신권사를 `다문화 대모`라 부른다. 그곳에서는 복음도 전하며 그들의 자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언어가 서툴러 작성하지 못하는 학교 서류나 민원 서류를 도와주고 처리 해주기 때문이다."우리는 이 일이 본업입니다"
각각 소방공사업체와 의류점을 경영하고 있는 바쁜 일상이지만, 부부는 주저 없이 말한다. "돈을 버는 직업은 부업일 뿐이고, 상처받은 이주영혼들을 돌보고 복음을 전하는 이 일이 바로 우리의 진짜 `본업`입니다." 거창한 제도나 물리적 교회가 미처 손길을 뻗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예수님의 긍휼을 품은 평신도 부부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이자 살아있는 복음이 되고 있다. 이들의 잔잔하지만 울림있는 실천은 오늘도 차가운 이국땅을 밟은 이주민들의 마음을 예수의 사랑으로 녹이고 있다.